제3차 요시다 내각 (제1차 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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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3차 요시다 내각 (제1차 개조)는 1950년 6월 28일부터 1951년 7월 4일까지 372일 동안 존속했으며, 일본국 헌법 하에서 내각총리대신의 국무대신 임면권에 의한 최초의 내각 개조였다. 이 내각은 대일 평화 조약 체결과 한국 전쟁에 대처하기 위해 요시다 시게루 총리에 의해 개조되었으며, 민주자유당 내의 갈등과 당내 융화를 도모하려는 배경 속에서 발족했다. 주요 각료로는 요시다 시게루(외무대신 겸임), 이케다 하야토(대장대신), 하야시 조지(부총리)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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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다로는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아소 시멘트 사장을 역임하고 1979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어 여러 요직을 거쳐 제92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으며 현재 자유민주당 부총재 및 최고 고문이다.
2. 재직 기간
- 재직 일수: 372일
3. 성립 배경
일본국 헌법 제68조에 규정된 내각총리대신의 국무대신 임면권에 의한 최초의 내각 개조이다.[5] 대일본제국 헌법 및 내각관제에서는 총리대신에게 각료 임면권이 없었고, 실례로 제3차 고노에 내각은 제2차 고노에 내각의 외무대신 마쓰오카 요스케를 해임하기 위해 "내각총사직→대명강하"(현행 헌법 하의 친임식)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성립하였다.
1950년 6월 17일, 미국 국무부의 존 포스터 덜레스 고문이 대일 평화 조약 협상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덜레스는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와 회담한 후 대일 강화 조약 체결 시기가 왔음을 확인하고, 같은 해 6월 22일에는 요시다 시게루 총리와의 회담을 시작으로 민주당의 도마베치 기조 최고위원장, 일본사회당의 아사누마 이네지로 서기장 등과 회담하면서 일본 측도 강화 조약 체결 의지가 높아졌다. 한편, 같은 해 6월 25일에 북한군이 북위 38도선을 기습 남침하면서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요시다 총리는 강화 조약 체결과 한국 전쟁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제3차 요시다 내각의 강화를 도모할 필요성을 느꼈다. 또, 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 내에서는 히로카와 고젠 간사장에 대한 오노 반보쿠파의 공격이 심해지면서 히로카와 간사장을 전격 경질했다. 게다가 야마사키 수반 공작 사건 이래 냉대되고 있었던 야마자키 다케시 전 간사장 등의 민자당 장로 요시다에 대한 반발을 완화시켜 당내 융화를 도모할 필요성도 있었다. 본 개조내각은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발족했다.
4. 각료
제3차 요시다 내각일본어 (제1차 개조)의 각료는 다음과 같다. 1950년 6월 28일에 임명되었으며, 재직 일수는 372일이다(제1차, 2차, 3차 통산 1,362일).[2]
4. 1. 내각관방
오카자키 가쓰오는 제3차 요시다 내각 (제1차 개조)의 내각관방장관을 역임했다. 내각관방부장관은 간노 요시마루, 이노우에 세이이치, 겐노키 도시히로(1951년 5월 25일 ~ )가 역임했다.
4. 2. 정무 차관
1950년 7월 12일에 다음 정무차관들이 임명되었다.
5. 세력 분포
국무대신 총 18명
국무대신 총 2명
